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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언어의 희롱

“대체로 언어는 진실을 감추는 도구다”라는 명언을 남긴 코미디언, 조지 칼린(1937~2008)의 ‘완곡한 표현에 대하여(On Euphemisms)’를 유튜브로 다시 본다.   전쟁 중 병사들이 겪는 신경 증상을 1차 세계대전 때 ‘전쟁 신경증(shell shock)’이라 했고, 월남전 후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그는 지적한다. 1920년대 초의 ‘신경증’이 반백 년 후 정신병으로 변한 것이다. 정부 지원 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장님을 ‘시각장애인(visually impaired)’으로, ‘지체장애인(physically handicapped)’을 ‘신체장애인(physically challenged)’으로 호칭을 바꾸는 사태에 대하여 그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소리친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컨디션을 바꾸어 부르면 컨디션이 바뀐다고 믿게 됩니다.”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말 바꿈 하면 망자(亡者)의 컨디션이 바뀐다는 심리상태다.    ‘말 바꾸기 운동’이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정신분열병을 조현병(調絃病)이라 부르면서 ‘분열’이라는 불쾌한 의미를 감추는 데 성공한다. 정신분열병을 의미하는 ‘schizophrenia’의 ‘schizo-’부분은 ‘찢어지다’라는 뜻으로 ‘가위(scissors)’와 말뿌리가 같다.   조현은 줄을 고르게 조절한다는 뜻. 줄을 조절한다는 의미가 마음 줄의 긴장도를 알맞게 하겠다는 뜻인지. 느슨하게. 아니라고?   편도선염, 대퇴골절, 대장암처럼 병변(病變)을 기술하는 진단명에서 멀리 가도 너무 멀리 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무엇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진술에 심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무엇인지를 조율하겠다는 치료 의도를 암시하는 진단을 내리는 것이 한국의 의학 수준인가.   반대로, 부드러운 표현이 강력한 표현으로 변하는 일이 정신과에서 터진다. 2023년 8, 9월에 걸쳐 월간 ‘Psychiatric Times’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에 대한 톱 기사가 표지를 덮었다. 주의가 산만한 것을 정신병으로 간주하다니.   미국에서 마약이 주성분인 ADHD 약이 동이 났다는 소식! 지난 20년에 걸쳐 꾸준히 상승하는 ADHD 과잉진단의 결과로 2023년 현재 약의 수요가 미국 제약회사의 공급 능력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분석이다.   과잉진단의 가장 큰 요인은 제약회사의 약 선전에 부응하여 진단의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 약이 먼저고 진단이 나중이라는 사연이며 의사들의 진단기준이 허술하다는 방증이다.   사회적인 압력도 큰 역할을 한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부모가 ADHD 자가진단을 내리고 의사에게 약 처방 압력을 넣는 것이다. 약은 코카인과 화학성분이 매우 비슷한 중독성 각성제다.   높지 않은 지능, 아동학대, 부모의 이혼 과정 같은 이유로 아이는 공부를 못하면서 마약 각성제를 먹는다. 그리고 약물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에게 성적이 뒤떨어지면 큰일 난다는 부모의 강박관념 때문에 제약회사들이 학술용어까지 써가면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속으로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2023년 가을이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언어 희롱 전쟁 신경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마약 각성제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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